지암 윤이후
조선 후기 문인.
1636년(인조 14) 해남에서 태어났다. 자는 재경(載卿), 호는 지암(支菴)이다.
할아버지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이고, 아버지는 윤의미(尹義美),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이다.
윤이후(尹爾厚)가 태어나기 열흘 전 아버지 윤의미가 스물네 살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어머니 동래정씨도 남편을 따라 죽으려 했으나, 윤선도의 만류로 아들 윤이후를 낳은 뒤에 음식을 끊고 닷새 만에 사망하였다. 윤이후는 이후 할아버지 윤선도 밑에서 자라다가 삼촌인 윤예미(尹禮美)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부인은 참봉 이사량(李四亮)의 딸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자화상」으로 유명한 문인화가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가 넷째 아들이다.
윤이후는 1636년(인조 14) 해남에서 태어났다. 1679년(숙종 5) 44세에 생원시에 급제하였고, 1689년(숙종 15) 증광시(增廣試)에 급제하였다. 이후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이조좌랑(兵曺佐郞), 정랑(正郎), 선혜청랑(宣惠廳郞),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등을 역임하였다.
윤이후는 1691년(숙종 17) 함평현감으로 부임했지만 서인의 발호로 1년 만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해남 본가에서 10여 리 떨어진 옥천[현 해남군 옥천면 팔산리]에 터를 잡아 집을 지었으며, 종가 소유인 남새[현 진도군]의 죽도(竹島)에 모옥(茅屋)[띠나 이엉 따위로 지붕을 인 초라한 집]을 지어 놓고 오가며 유유자적하다가 1699년(숙종 25) 사망하였다.
윤이후는 해남으로 낙향한 후인 1692년 3월 7일부터 1699년 9월 8일까지의 일상을 담은 3책의 일기 『지암일기(支菴日記)』를 남겼다. 『지암일기』는 조선시대 양반 사회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향촌 사대부의 여행기로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지암일기』 3권에는 함평현감으로 간 지 6년 만에 서인의 발호로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 감회를 적은 가사 「일민가(逸民歌)」가 수록되어 있다.
친필일기인 『지암일기(支庵日記)』 제3권 1698년(숙종 24) 무인 6월 26일조에 ‘일민가 62구’라는 제목 아래에 적혀 있으며, 그 끝에는 시조 1수도 있다. 본문은 국한문체로 되어 있고, 가다가 소주(小注)도 붙였다.
내용은 관계(官界)를 떠나 초야에서 사는 고고한 심성과 자연에 몰입한 경지와 시인으로서의 멋과 연군의 정이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은 작자자신의 심회뿐만이 아니고 당시 파당에 밀려서 자연에 묻혀 살던 모든 사람들의 정회를 대신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자어가 많이 쓰였지만 조사(措辭)가 매우 능란하고 대우법(對偶法) 등도 잘 구사하였다. 능히 할아버지 윤선도(尹善道)의 가통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또 말년에 죽도에 머무를 당시 여러 문인들과 주고받은 시들을 엮은 『죽도시첩(竹島詩帖)』을 남겼다.
[출처]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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