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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녹우당문화예술재단

고산 작품 및 자료

윤고산 문학산실, 금쇄동 원림

조회 수 1341 추천 수 0 2023.03.09 19: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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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수정에서 바라본 두륜산 전경

 

금쇄동은 전남 해남군 현산면 구시리 산181번지 외 현산고성이 위치한 산정상부를 포함한 그 일대를 지칭한 곳으로 고산공 윤선도가 54세때인 인조 18년(1640)에 이곳에 머무르며 『금쇄동기』, 『산중신곡』 등을 비롯한 여러 문헌들을 집필하였다. 고산공이 원림(園林)을 조성한 고성(固城)안과 『금쇄동기』에서 명명한 22개의 지명 등이 있으며, 고산공이 문학적 영감을 얻기 위해 인위적으로 개척한 문학산책로로서 건물지와 연못지의 유구가 남아 있고, 금쇄동내에 위치한 현산고성(懸山固城)은 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동문, 서문, 북문 등 3곳의 문지, 수구의 성곽시설과 망루지, 건물지, 제방 등의 성내시설이 남아 있다

 

이곳은 고산공의 시문학 창작의 산실로서 국문학상의 학술적인 가치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옛성이 잘 남아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큰 유적이다. 금쇄동은 2001.8.17. 사적 해남윤선도유적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유적조사 및 발굴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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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수정터와 지일

 

   "조선시대를 주도하던 유학자들은 성현의 사상을 배우고 이에 따라 성인이 되는 것을 최고로 여겼으며, 관직에 나아가 정치적으로 그 뜻을 이루고자 하였다. 그러나 조선중기 이후 조선의 뿌리인 유교문화의 사조가 사화, 당쟁으로 크게 위축되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자 관직을 멀리하고 향촌에 머무르면서 은일적 생활을 하는 유학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천하에 도(道)가 있으면 나아가고, 도가 없으면 숨는, 이른바 이들을 「사림」이라 하는데 그들은 중국의 주자가 무이구곡에서 은병정사(隱屛精舍)를 짓고 은둔했던 것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며 그와 같이 배움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 자연에 은거하는 생활을 하고자 하였다. 

 

   이는 현 사회의 공리와 현달에 눈 돌리지 않고 바르게 살고자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림들의 풍류는 여가풀이와 같은 유희라기보다 하나의 인생관 내지는 도(道)에서 출발한 것이며, 이와 같은 경향은 유교사상과 함께 도교사상을 섭렵하며 유유자적하는 초세적 원림문화가 정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원림(園林)은 거주 환경속에서 자연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조형자연의 예로 세속과 멀어진 것, 즉 이상향에 가까울수록 높게 평가하였다."

 

   이러한 면에서 고산공은 이 조영자연을 최고의 경지로 이루어 낸 조선조 유학자의 한 사람이며, 선생이 정계에서 은퇴한 후 집안사를 장남 인미에게 맡기고 일구일학의 마음으로 산수를 즐기기 위해 찾은 곳이 수정동이며, 이후 문소동을 오가다가 금쇄석궤를 얻는 꿈을 꾼 후 이곳을 발견하고 은거한 현산 구시리 금쇄동은 산중별서 중 최고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이다.

 

고산공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산수자연을 아름답게 표현하신 분이다. 그래서 정인보 같은 이는 윤고산선생을 일러 "호남 산수간의 야경을 귀신같이 묘사하였다."라고도 하였다. 

 

   고산공의 별세계는 선생 마음속에 있었다. "세상을 아릅답게 바라보고 표현해보면 신선은 별것인가?" 우리가 윤고산선생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웰빙을 찾는 이들이라면 윤고산선생의 이 마음을 한번쯤 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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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쇄동기에 적혀 있는 22경과 건물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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