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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녹우당문화예술재단

고산 작품 및 자료

고산가사

조회 수 140 추천 수 0 2021.07.27 1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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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공 윤선도의 문집인 《고산 유고(孤山遺稿)》 전 6권 6책 중 제6권 <별집(別集) 하(下)>를 이르는 말.

‘가사(歌辭)’라는 이름으로 윤선도의 시조가 수록되어 있다. 수록된 시조는 산중신곡(山中新曲) 20수, 산중속신곡(山中續新曲) 2수, 초연곡(初筵曲) 2수, 파연곡(罷宴曲) 2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40수, 몽천요(夢天謠) 3수, 견회요(遣懷謠) 5수, 우후요(雨後謠) 1수의 순으로 도합 75수가 수록되어 있다.

 

산중신곡은 작자가 유배지 영덕(盈德)에서 풀려나와 전남 보길도의 금쇄동(金鎖洞)에 은거하고 있을 때(56∼59세)의 작품인데, 만흥(漫興) 6수, 조무요(朝霧謠) 1수, 하우요(夏雨謠) 2수, 일모요(日暮謠) 1수, 야심요(夜深謠) 1수, 기세탄(饑歲歎) 1수, 오우가(五友歌) 6수, 고금영(古琴詠) 1수, 증반금(贈伴琴) 1수 도합 20수를 통틀어 이른다.

 

그 내용을 보면 만흥은 ① 혼란한 정계(政界)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묻히는 평화스러운 마음, ② 간소한 생활과 산수(山水)를 벗하는 심회, ③ 원산(遠山)의 가경(佳景), ④ 산림(山林)에 묻혀 사는 생활, ⑤ 산림에 파묻혀 자연을 완상(玩賞)하며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는 심회, ⑥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도 임금의 은혜라는 성은(聖恩)의 무궁함을 각각 노래하였다. 조무요는 미운 안개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지만 뜨거운 태양에 걷히리라는, 즉 간신의 무리가 밝은 성덕(聖德)으로 제거되리라는 상징적인 내용이다. 하우요는 장마철의 농촌생활을 읊은 작품이며, 일모요는 산촌의 해진 뒤의 풍경을 읊은 노래, 야심요는 산중에서 한적한 밤의 안식을 노래한 작품, 기세탄은 궁핍한 농민의 생활을 탄(歎)한 노래이다. 오우가는 끊이지 않고 흘러내리는 물, 변함없는 바위, 눈과 서리에 굽히지 않는 솔[松], 사철 푸른 대[竹], 보고도 말 아니하는 달[月]을 제재로 하여 읊었다. 고금영은 묵혀 두었던 가야금을 다시 한번 타 보며 현재의 처지를 읊은 노래, 증반금은 현묘(玄妙)한 음을 내는 가야금을 찬탄한 노래이다.

 

산중속신곡은 추야조(秋夜操) 1수와 춘효음(春曉吟) 1수를 통틀어 이르는데, 추야조는 작자의 59세 때 작품으로 추야(秋夜)의 심회를 읊은 것이며, 춘효음은 60세 때의 작품으로서 새봄을 맞이하는 감회를 읊은 것이다.

 

초연곡은 나라의 연회(宴會) 석상에서 임금께 풍간(諷諫)하기 위하여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첫째 수에서 대장(大匠)의 공은 충신들의 공로를, 나무가 곧음은 임금의 인덕(仁德)을, 고자줄은 성현의 법도를 가리킨 것이고, 둘째 수에서 술과 국은 임금의 성덕을, 누룩 섞을 탓과 염매(鹽梅) 탈 탓은 어진 신하들의 보필할 탓임을 비유한 것이다. 임금의 만수무강을 비는 충성심에 곁들여 첫 수에서는 성현지도(聖賢之道)를, 둘째 수에서는 보필대신(輔弼大臣)을, 풍간법(諷諫法)을 빌려 잘 나타내고 있다.

 

파연곡은 첫 수에서 연회를 즐기되 뒤에 따를 근심과 한탄을 생각해서 절제할 것과, 둘째 수에서 주도(酒道)와 무례(舞禮)를 지킬 것을 세련된 기교로 읊은 교훈적인 노래이다.

 

어부사시사는 세전(世傳)하던 <어부가>를 이현보(李賢輔)가 개작하고 다시 작자가 창작한 춘사(春詞) ·하사(夏詞) ·추사(秋詞) ·동사(冬詞) 각 10수씩 40수로 이루어진 연시조(連時調)이다. 원가(原歌)와 개작가(改作歌)는 한문 고시(古詩)를 그대로 따서 토를 붙인 것에 불과한데, 난삽한 한시구(漢詩句)를 순우리말로 바꾸었다. 특히, 기교면에서 대구법(對句法)의 처리, 환경변화와 시간의 추이에 따른 시상(詩想) 전개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다.

 

몽천요는 작자가 66세 때(1652)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었으나 정치적인 여건 때문에 노환(老患)을 핑계삼아 경기도 양주(楊州)에 있는 명승지 고산(孤山)에 가서 휴양하고 있을 때에 지은 작품이다. 내용은 당시의 조신(朝臣)들의 방해로 은퇴하지 않으면 안되는 비통한 심정과 혼탁한 조정의 상황을 개탄한 노래이다. 비분과 증오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노출하지 않고 함축적인 표현을 써서 상징적으로 나타내었다.

 

견회요는 작자가 30세 때 경원(慶源) 적거(謫居)에서 지은 노래이다. 그 내용을 보면 ① 남이야 뭐라고 말하든 자기 신념대로 살아가겠다는 고고한 의지를 읊었고, ② 자기의 억울한 사정을 임만은 알아달라는 애절한 호소를 노래하였으며, ③ 임금을 끊임없이 그리워함을 시냇물에 비유하여 읊었고, ④ 산너머 물 건너 저 멀리 고향에 두고 온 어버이를 그리는 외로운 심정을 그리고, ⑤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떠나서 부모에 대한 효성을 생각할 수 없다는 충효의 관념을 읊었다. 관념과 정감을 직서(直敍)하지 않고 적절한 상징과 비유법을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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